어머니는 고결한 분이셨고 아버지에게 충실하셨어요. 반면 아버지는 약간 화려한 삶을 사셨죠. 어머니는 한눈을 팔 분이 아니셨죠. 늘 도덕적이고, 충실하고 가족을 위해 평생 동안 희생하셨어요. 그래서 그런 비전을 보시는 것 같아요. 꿈에서 보는 비전을요. 지금은 날 매일 보신다고 편지에 쓰셨더군요. 또한 시도 써서 보내셨는데 어머니가 쓰신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시를 쓰신 적이 없었거든요. 정말 아름다운 시였어요.
어머니가 사셨던 시절, 전쟁이 일어나기 전 어울락(베트남)에선 여성들이 문맹이었어요.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문맹이었죠. 남성 중심의 사회였으니까요. 가령 중국 같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어요. 그래서 여성들은 밖에 나가 뭔가 배우는 게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했죠. 배워도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여성들은 그저 설거지하고 아이들의 기저귀나 빨면 됐죠. 근데 왜 교육이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교육을 별로 못 받으셨죠. 읽고 쓸 줄은 아셨지만 지식층은 아니셨죠.
허나 어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쓰셨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나를 위해 여러 번이나 아주 영적인 시를 쓰셨죠. 가족 간의 애정이 담긴 평범한 시가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쓰셨는지 몰라볼 정도였죠. 아이들과 가족을 너무 사랑하던 분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변하셨을까요? 어머니의 모든 말이 영적이었고, 모든 단어가 부처에 관한 것이었죠. 『오, 제가 부처님을 따를 수 있다면, 제가 부처님이신 당신을 따를 수 있다면』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딸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모든 것이 경건하고 영적이었어요. 어머니가 쓰신 글인지 못 알아볼 정도였죠.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달랐어요. 어머니는 장사를 하신 분으로 매우 실리적이셨죠. 내가 아는 바로는 어머니는 장사를 잘 하셨고 열심히 일해서 온 가족을 부양하셨어요. 나와 자매를 금으로 치장해 주셨죠. 아버지의 수입은 거기에 못 미쳤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돈을 타 쓰셔야 했죠. 아버지껜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이었죠.
그런데 아버지는 다르셨죠. 좀 더 학식이 풍부하고, 더 낭만적이고 관대하셨죠. 어머니는 더 현실적이고 더 근면하셨고, 아주 실용적이셨고요. 난 두 분 모두에게서 배운 것 같아요. 관대하고 낭만적인 면과 근면하고 실용적인 면을요. 보통 이 두 가지는 함께 있지 않죠. 실용적인 사람은 시적이지 않죠. 허나 난 부모님 덕분에 두 가지 면이 다 있는 것 같아요. 두 분은 물과 불 같으셨어요.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검소하고, 독립적이었고 아버지는 낭만적이었지만 듬직하진 않았죠. 어머니가 너무 듬직하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는 늘 뭔가 얻을 수 있다는 걸 아셨죠. 그러니 돈을 버는 데는 별로 열의가 없으시고 버는 족족 다 쓰셨어요.
허나 어머니는 아주 좋은 여성이자 겸손한 아내이셨어요. 내 기억에는 어머니가 우릴 키우셨고, 대부분의 돈은 어머니에게서 나온다는 걸 다 알았지만 나는 더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늘 아버지께 가서 허락을 구해야 했어요.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전에 아버지께 가서 허락을 받도록 하셨어요. 당신이 돈을 다 벌고 온 집안을 돌본다고 해서 가장처럼 행동하진 않으셨죠. 아름다운 여성이셨어요.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수록 이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 더욱 알게 되네요. 정말 고결하셨어요. 어머니가 지금 매일 좋은 체험을 하는 것도 당연해요.
고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매일 4시간 이상 명상을 하시죠. 류머티즘이 있으신데다 전에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신 게 있어 통증이 있으시거든요. 어머니가 내게 기도한 건 오직 『병세가 나아져서 더 오래 앉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였어요. 그게 다였죠. 어머니는 내게 돈이나 지원을 요청하신 적도 없고 더 훌륭한 비전을 보게 해달라거나 불국토에 더 빨리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적이 없어요. 전혀요. 한 번도 내게나 다른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신 적이 없어요. 주시기만 하고 받으시진 않았죠. 아름다운 분이시죠. 보통 사람으로선 드문 일이에요. 그렇죠? 이런 사람은 찾기 힘들죠.
어머니는 전에 평생 비건식을 하신 건 아니지만 소식을 하셨고 아주 검소하셨어요. 그래서 비록 비건은 아니셨지만 동물주민 고기 같은 건 거의 드시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좋은 것들은 우리와 아버지께 주셨고 당신께선 남은 걸 드셨어요. 그리고 아주 부유하셨지만 때론 깁고 꿰맨 옷을 입으셨어요. 어머니가 내게 보여 주신 그 많은 금들을 당신의 안락함을 위해 쓰신 적은 없었어요. 내가 이 모든 좋은 품성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이제 알겠어요. 부모님이 가까이 계실 때는 그분들을 깊이 생각해 보진 않으니까요. 그냥 당연시하게 되죠.
허나 이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부모님 얘기를 하니 내 마음이 더 열려 훌륭하신 성품을 알겠네요. 내 부모님을 칭송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얘기에서 뭔가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내 부모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우리가 배울 만한 다른 분으로 여기세요. 나도 그분들한테서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분들의 겸손, 관대함, 희생정신을요. 어머니가 매일 내면의 스승을 보시는 것도 당연해요. 이젠 아주 영적이세요. 내게 쓰신 편지를 보고 알았어요. 체험담을 들려주셨는데 어머니가 얼마나 변하셨는지 알 수 있었죠. 허나 이전에도 어머니는 이 모든 품성을 갖추고 계셨죠. 평생 쌓아오신 그 모든 미덕들 덕에 그런 체험을 하신 거예요. 제 어머니이신 것도 당연해요. 우연이 아니죠. 지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셨는지 기억납니다.
빠져나오실 수 있게 후원해 달라는 요청도 안 하셨죠. 『늘 당신들은 괜찮으니 내게 걱정 말라』고 쓰셨죠. 괜찮지 않을 때도요. 어머니는 『걱정 말고 그저…』 『마음의 평화』를 뭐라고 하나요? 『그냥 마음 편히 지내고 자신을 잘 돌보세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부담 갖지 말고요』 어머니는 당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염려하셨어요. 이건 정말 드문 품성이죠. 왜냐하면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뭔가 보답해 주길 기대하고 자녀들이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그들을 탓하거든요. 『내가 너를 키워줬고 교육도 시켜줬는데 이제 우리를 돌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구나』 그렇게 자녀들을 탓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안 그러셨죠. 내 기억으로는요. 우리가 돌봐드리지 않고 이것저것을 해드리지 않았다거나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면서 우리 중 누굴 탓하신 적이 없어요. 물론 부모님은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고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날 탓하신 적도 없어요.
난 훌륭한 부모님을 둔 것 같아요. 운이 아주 좋죠.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내 행운을 공유하는 거예요. 그분들을 숭배할 필요는 없죠. 난 내 제자들이 그들을 보러 가는 걸 금했어요. 내 집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돼요. 내 거처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난 여러분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지만 부모님은 안돼요. 연로하셔서 조용히 지내셔야 해요. 여러분을 잘 맞아 주실 수 없죠. 그럴 필요도 없고요. 내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충분해요. 가서 부모님을 괴롭히지 마세요. 그분들은 아주 연로하셔서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두 분 다 입문하셨어요. 어머닌 명상을 많이 하세요.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아침 7시까지 명상한다고 하셨죠. 그리고 저녁에도 두세 시간 명상하고요. 입문 이후로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허나 입문은 먼 데서 하셨죠. 여러분은 운이 더 좋아요. 내가 직접 면접도 하죠.
부모님은 나를 전혀 못 보셨고 먼 곳에서 입문하셨어요. 허나 어머니는 정말 좋은 체험들을 하셨죠. 그러니 내가 그 자리에 없다고 염려하지 마세요. 난 25년 동안 어울락(베트남)에 가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매일 집에서 나를 보신다고 해요. 그리고 이젠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전엔 상상도 못하고 믿을 수도 없던 일이라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쁨과 평화를 느낀다고 하셨죠. 그냥 이러셨죠. 『내가 나이가 많으니 좀 더 명상을 많이 하고 뒤처지지 않도록 축복해 주세요. 수행할 시간이 부족할까 염려됩니다. 부처님을 못 쫓아가고 뒤처질까 싶어서요』 그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젊었더라면 곧바로 부처님을 따랐을 거예요』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명상할 시간을 더 갖고 싶어 하셨어요. 한데 여러분이 나한테 하듯이 부모님 댁에 간다면 가엾은 어머니는 명상할 시간이 없으시겠죠. 게다가 『형편없는』 우리 자식들을 위해 온갖 희생을 하시느라 몸이 병들고 나이 들고 약해지셨어요.
어떤 이들은 그곳에 있는 내 집에 가서 절하길 원했죠. 난 말하길, 우리가 심은 코코넛 나무 주변에 앉아서 절을 하면 코코넛이 머리 위로 떨어질 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책임 못 진다고요. 그러니 거기 가지 마세요. 뭐 하러 가나요? 나의 부모님이 편히 사시도록 놔두세요. 난 이 모든 영광, 헛된 영광을 원치 않아요. 여러분이 명상을 하고 내면 스승의 힘을 인식하며 여러분 자신과 조상, 친척, 친구, 그리고 여러분이 사는 나라와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세상을 축복하는 걸로 충분해요. 그것이 우리의 동기예요. 그게 내가 가장 기뻐하는 거죠. 외적인 문제도 없고요.
여기서 어울락(베트남)까지 가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들죠. 이 모든 코코넛 나무에 절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나무가 많거든요. 난 그 아래에 앉곤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이 나무들에 대고 절을 하거나 그 밑에 앉아서 부처가 되고 싶어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러다 코코넛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죠? 만일 제자 백 명이 거기 가서 백 그루의 코코넛 나무 아래에 앉았는데, 모두 머리가 깨진다면 어떻게 하나요? 오늘 내가 한 얘기가 도움이 됐나요? 도움이 되겠어요? 그 얘기대로 살고자 노력할 건가요? 그렇다면 최소한 말한 보람이 있는 거고 아니면 지치는 일이죠.
오늘 아침에, 난 침대에서 명상하다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게 정말 어렵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어요. 전에도 몇 번이나 그랬으니 염려 말아요. 이미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으니 걱정 말아요. 그냥 그런 날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결코 포기하진 않겠지만 언제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위안이 돼요.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위안이 되죠. 절대 못 그럴 것 같지만요. 하지만 언제든 원하면 그만둘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면 압박감이 사라져요. 난 스스로에게 이랬어요. 『마지막으로 하는 거야, 그런 뒤 그만두는 거야』 늘 매번 『마지막』이라며 자신을 속이죠. 가끔은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으니까요.
여전히 그래요, 말했듯이 난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대중 앞에 서기가 두려워요. 인도에선 늘 자신을 숨겼죠. 스승이 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날 주목했어요. 아마도 내가 거기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거나 『이상해』 보여서 그랬나 봐요. 외계인처럼 생겼거나 해서요. 난 어렸을 때부터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어요. 난 정말 수줍음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군중한테 익숙해져야 하는 거겠죠. 허나 그렇다고 해도 늘 그러고 싶은 건 아녜요. 그냥 할 뿐이죠. 그냥 내 감정을 다스리는 거예요. 내가 정말로 늘 군중 속에 있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사진: 진정한 보호는 물질 영역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