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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아름다움, 9부 중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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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있어요. 내가 평상복을 입기‍ 시작한 이후로‍ 내게 오는 제자들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 오는 제자들은‍ 좀 더 등급이 높아요. 그들은 외적인 면에‍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외모를 비판하지 않아요. 그들은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이곳에 온‍ 유일하고 궁극적인 목적은‍ 순전히 영적인 것이죠. 그들은 이제 눈이 멀었어요. 외적인 면에 대해‍ 눈과 귀가 멀었죠.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오직 영적인 길에만‍ 집중합니다. 그들의 등급이 더 높아서‍ 이번에는 좀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길을, 이미 정해진 이 길을‍ 계속 가죠. 적어도 그런 쓸데없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아요. 내면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아요. (네)‍

좋아요. 이제 다 됐어요. 빚은 다 갚았어요. 이만 집에 가도 될까요?‍ 내일 가는군요. (네)‍ 내일 가요. 또 봐요. 좋아요. 내가‍ 좀 더 볼게요. 아직 안 본 사람 있나요?‍ 내가 안 본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 내가 아직 안 본 사람?‍ 거기 있는 당신은 너무‍ 작군요. 일어나세요!‍ 세상에, 나이에 비해‍ 정말 잘생겼네요!‍ 내가 봐주길 원하는 것도‍ 당연해요. 좋아요. 당신을 봤어요. 다른 사람 있나요?‍ (올라가세요)‍ 저쪽 사람들은 일어나세요. 내가 볼 수 있게요. 키 작은 사람들이요. 키 큰 사람들은 앉고요. 좋아요. 보여요. 보여요. 네‍. 좋아요. 또 있나요?‍ 난 계속 같은 얼굴만 봐서‍ 지치는데‍ 여러분은 계속‍ 손을 드는군요!‍ 농담이에요. 괜찮아요. 농담이에요.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복이 줄어들어요.

(여기 온 지 2년 됐습니다)‍ 네? (전 벌써 여기 온 지‍ 2년 됐습니다)‍ 2년은 아무것도 아녜요. 어울락(베트남)인들은‍ 수십 년간 기다렸지만‍ 나를 못 만났어요. 중국 본토에 있는‍ 많은 중국인들도‍ 나를 본 적이 없고요. 네? (이번에 스승님을‍ 처음 뵀습니다)‍ 처음이군요. 좋아요. (저도 뵌 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스승님을 처음 뵀습니다)‍ 처음이라고요? (네)‍ 소감이 어떤가요?‍ (너무나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하다고요? (네)‍ 좋아요,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내면으로 나를 봐요. (네)‍ 특히 어울락인들은‍ 명상 중에 내면으로‍ 나를 자주 보죠. 나의 어머니도 포함해서요. 『바오 꾸아』는 어울락(베트남) 단어죠?‍ (네) 그런가요?‍ (『포함하다』란 뜻입니다)‍ 오, 『포함하다』군요. 『바오 꾸아』는 중국어죠. 네, 『포함하다』예요.

때로 고통스럽고‍ 억압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갈망하게 돼요. 그러면 그때 불성이 깨어나‍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이‍ 깨달음을 얻고 내면으로‍ 자유를 얻게 해주죠. (네)‍ 그러니 그런 상황이‍ 반드시 불행한 건 아녜요. 그런 게 아니죠. 그래서 수많은‍ 어울락(베트남)인들이‍ 내 화신을 본 거예요. 반면 미국에 사는‍ 어울락(베트남)인들은‍ 느긋하고 『게으르죠』‍ 늘 내 육신만‍ 보려고 하고‍ 화신을 보는 데는‍ 관심조차 없어요. 그건 의존이에요. 그래서 불경에‍ 자녀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아버지가 약을 먹으라고‍ 해도 아이들은 먹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먼 곳으로 갔고,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소문을 퍼뜨렸어요. 그제서야 아이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정신을 차려 아버지가 준‍ 약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약을 복용하자‍ 아이들은 병이 나았죠. 바로 그런 거죠.

때론 살아있는 스승의‍ 육신이 무상하다는 게‍ 오히려 좋은 일이죠. 스승이 영원히 산다면‍ 사람들은 자기만족에 빠질 테니까요. 우리의 마음, 낮은 의식, 즉 잠재의식이요. 잠재의식이라 하나요?‍ 잠재의식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스스로‍ 기능하는 부분인데‍ 자기만족에 빠지기 쉽죠. 『아, 오늘 스승님을‍ 뵙지 못하면‍ 내일 뵈면 되고‍ 내일이 안 되면‍ 모레에 뵈면 돼.‍ 모레가 아니면‍ 다음 달에 뵈면 되고‍ 다음 달이 아니면‍ 내년에 뵈면 돼‍. 그분은 늘 거기에 계시고‍ 어디에도 가시지 않아』‍ 그래서 우린 갈망을 잃고‍ 내면의 스승을 찾고자 하는‍ 신실한 열망을 갖지 못해요. 그 대신 우리는 외적인‍ 스승에게만 의지하고‍ 그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삶이‍ 진보하지 못하게 되죠. 그래서 때로 내가 여러분을‍ 자주 못 보는 게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도 해요.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여러분에겐 좋은 일이죠. 잘못된 것은 없어요. 모든 것이 좋아요.

모든 환경이 우리에게 좋죠. 모든 것이 신의 안배예요. 알겠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전쟁의 고통은 생생했고‍ 지금 나라는 자유롭지 않죠. 그래서 여러분은 나라를‍ 떠났지만, 매우 비참했어요. 하지만 그 고통 속에는‍ 행복의 씨앗이 있어요. 모르겠어요?‍ 안 그랬다면 어떻게 오늘‍ 여기 앉아 있겠어요?‍ (맞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뭐라 하죠…‍ 『의존하다』를 어울락어로‍ 뭐라고 하나요?‍ 우린 축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늘 우리 내면의 공덕에‍ 의지해야 해요. 그게 옳은 길이에요. 그러면 어떤 재앙도‍ 진실로 우릴 못 건드려요. 그래서 온 나라가‍ 고통받았음에도‍ 여러분은 무사히 떠났고‍ 지금 여기 앉아 늘‍ 스승을 보길 원하는 거죠. 그리고 여전히 계속해서‍ 나를 보고 또 보죠. 예를 들면 그래요.

그뿐 아니라‍ 여러분은 수행을 통해‍ 이 미국에 축복과 영적인 분위기를 가져오죠. 혹은 여러분이 사는‍ 어떤 나라에요. 보다시피, 여기 미국인들도‍ 수행을 하지만 소수예요. 이제 여러분은 미국 시민이‍ 되었으니 여러분의 수행은‍ 미국에 행복을 가져올‍ 거예요. 미국은‍ 더 많은 공덕을 얻는 거죠. 여러분 조상과의 연결로‍ 어울락(베트남)이‍ 혜택받을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여러분으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이곳에 수행하러 오는‍ 미국인이 많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런 거예요. 이제 여러분은 미국 시민이‍ 되었으니, 세상을‍ 돕고 있는 거죠. 어울락(베트남)인은 이제‍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수행한다면‍ 자신이 사는 나라에도‍ 도움이 돼요. 그들은 그 나라의 시민이‍ 되어 그 나라를 돕죠. 그곳 사람들은 수행을‍ 별로 안 하거나 신실하게‍ 수행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신이 안배하신 것은‍ 무엇이든 항상 좋아요. 허나 때로‍ 평범한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 안배 속에서‍ 불만을 느끼고 말하죠. 『내가 신이라면‍ 당장 다르게 안배할 텐데』‍ 『만일 나라면』 네,‍ 『모든 걸 망쳐버릴 텐데』‍ 알겠어요?

때로 우린‍ 신을 비난하기도 해요. 신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죠. 허나 사실‍ 그건 우리가 진실을 몰라서‍ 그래요. 우리는 신의‍ 참된 방식을 이해 못 해요.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니까요. 한 예로, 어떤 여성이‍ 무척 아름다워서 세계‍ 미인 대회 우승자라 해도‍ 우린 그녀의 그림자만 봐요. 그걸 뭐라고 하나요?‍ (그림자요)‍ 땅에 드리운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만 보죠. 그러니 그녀가 진정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떻게‍ 알겠어요? 이 세상은‍ 진정한 세계의‍ 어두운 그림자일 뿐이에요. 완전하고 온전하게 아름다운‍ 세계의 그림자이죠. 보통 그림자는 휘고‍ 뒤틀려 있잖아요. 그렇죠?‍ 때론 반쯤 가려져 있고‍ 머리는 납작해 보이고‍ 다리는 길어 보이며‍ 몸통은 휘어 보이죠. 사람의 그림자는 종종‍ 왜곡되어‍ 실제 모습과는‍ 전혀 같지 않아요. 처음부터 같을 수가‍ 없는데 여러모로‍ 더 기이한 행태가 되죠. 그러니 그림자만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이‍ 못생겼다고 할 수‍ 있겠어요? 사실은‍ 미스 월드인데 말이죠.

이것과 같은 원리이자‍, 같은 진실이죠. 이 세상의 삶은‍ 그림자이며 진정한 세계의‍ 어두운 반영일 뿐이죠. 그래서 명상할 때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거예요. 세상도, 재난도 없고‍ 아무것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음을 깨닫죠. 심지어‍ 몸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죠. 창조주의‍ 참된 세계, 흠 하나 없고‍ 고통 없는 완전한‍ 세계에 들어갔으니까요. 우리는 이 거짓된 세계,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기 때문에 고통받아요. 우린 그림자가 뒤틀리거나‍ 너무 길게 늘어나거나‍ 짧아지거나 납작해지는‍ 것을 보고 비판하죠. 하지만 그림자의‍ 진짜 주인, 진짜 사람을 볼 때야‍ 판단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진짜 사람은 아름다워요. 그림자와는 딴판이죠. 마찬가지로‍ 모든 곳의 진정한 세계는‍ 부처님의 세계이죠. 그래서 때로‍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부처님의 세계가 보이고‍ 이 세상이 부처님의‍ 정토로 보이는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 한 제자가 의심하며‍ 『부처님은 왜‍ 복이 없으신 것 같지요?‍ 부처님이 계신 곳은‍ 어디든 정토가 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정토는 웅장하고‍ 청정해야 하는데‍ 어째서 이 세상처럼‍ 거칠고 더러울 수 있나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의 주인이신데도‍ 어째서 그분의 땅이‍ 이렇게 추한 걸까요?‍ 저 위의 다른 정토들은 아주 아름답다고‍ 하는데요』라고 말했죠. 금, 그걸 뭐라 하나요?‍ (땅에 깔려 있습니다)‍ 『땅은 금으로 깔려 있고, 집은 금강석으로 지어졌고‍ 천장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던데요. 이 부처님의‍ 땅은 왜 이리 초라하죠?』‍ 그는 그렇게 의심했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그의 마음이 불순하기에‍ 땅이 불순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어요. 『마음이 맑으면‍ 땅도 맑은 법이다』‍ 그래서, 그가 그걸 봤을 때‍ 자연스럽게 진보했죠.

그러므로, 깊이‍ 수행하지 않았거나‍ 대삼매경이나‍ 청정한 경지에‍ 들어가지 않은 이들은‍ 오직 겉모습만‍ 볼 수 있어요. 우린 수행을 하거나‍ 깊은 명상에 들어갈 때‍ 내면의 경지를 볼 수 있죠. 바깥세상은 진정한 세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요. 내면에서 참된 세계, 무한히 아름다운 세계를‍ 인식해요. 그래서 어디에‍ 앉든 진정한 경지가 되죠. 그래서 『부처는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그래요. 우린 부처의 경지를 여기로‍ 가져왔어요. 사실 이곳은‍ 이미 부처의 세계예요. 우린 그 사본을 보는 거죠. 뭘 본다고요? (복사본이요)‍ 네, 복사본, 진정한 세계의 복제품이죠. 단지 그림자일 뿐인데도‍ 우린 그것에 매료돼 있어요. 그러니 원본을 상상해봐요. 그림자만 봐도 이럴 수 있죠. 『오, 저 여성은 아름다울 거야.‍ 코의 그림자가‍ 아주 높아 보이고‍ 머리카락이 긴 것 같아』‍ 우린 이미 매료돼 버려요. 그러니 그 사람, 정말로‍ 아름다운 그 사람을 실제로 본다고 해봐요. 진짜 그 사람을 보고 나면‍ 당연히 그림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죠. 누가 그렇게 어리석겠어요. 이미 방 안에 있는‍ 진짜 미인을 봤는데‍ 밖에 나가 그녀 그림자를‍ 보겠다고 고집부릴까요?‍ 그럴 사람은 없죠. 그렇죠?‍ 우린 분명 진짜인 그 사람을‍ 보길 원할 거예요.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고‍ 내면세계를 잠깐이라도‍ 엿보거나‍ 그 내면세계에 완전히‍ 들어간 후에는 더 이상‍ 허상의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하지 않죠. 거짓된 바깥세상은‍ 더 이상 아무 매력이‍ 없죠. 그렇죠? (네)‍ 우린 단지 여기서 살며‍ 노는 것뿐이죠. 그게 다예요.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자가 진정한‍ 출가자라고 말한 거예요. 깨달음을 얻은 후에야‍ 진정한 출가자가 될 수 있죠. 절에서 살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은 순수하죠.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지는 않았더라도‍ 우리 마음은 더 이상‍ 물질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탐욕이나 욕망이 없죠. 만일 부양해야 할 남편, 아내, 가족이 있다면‍ 단지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에 하죠. 우리 마음은 더 이상‍ 갈망도 없고 사적인‍ 집착이나 뭔가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없죠. 그것이 진정한 출가자예요. 마음의 출가가‍ 외적인 출가보다 더 중요하죠.

오늘날 외적인 출가는‍ 너무 번거로워요. 매번 공항을‍ 통과할 때마다 너무 복잡해져서‍ 나는 그것을 포기했어요. 내면의 출가는 영원하지만‍ 외면의 출가는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변할 수 있죠. 그래서 난 더 이상‍ 출가나 재가 수행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요. 때로 여러분은‍ 겉모습에 너무 집착해서‍ 늘 소위 출가자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니까요. 허나 그 출가자들이‍ 꼭 여러분보다 등급이 높은 건 아니에요. 사실 때로 출가자들이‍ 자신의 영적 체험을‍ 말하는 걸 들어보면‍ 경지가 매우 낮습니다. 때로 난 놀라서‍ 입이 벌어지기도 해요. 그러니 우리가 여전히‍ 뭔가에 집착한다는 건‍ 아무도 우릴 비난하거나‍ 비판하진 않아도‍, 우리의 경지가 아직 높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우리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성찰하여‍ 점진적으로 진보해야‍ 한다는 거예요. 단점은 뭐든‍ 줄여야 합니다. 그게 다예요. 그러면 우린 스스로를 알고‍ 자신의 스승이 될 겁니다. 다른 누가 우리 스승이‍ 될 수 있겠어요? 그게 다죠. 좋아요. 다들 잘 자요.

사진: 신의 축복이 물질 존재에 흘러넘쳐요 (고통 없는 재료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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